18·19세기 한양도성 안 궁묘의 입지와 위상

건축역사연구, 2012, Vol.21 No.6, pp.7-18.

설명 discription

본 연구는 18, 19세기 한양의 도성 안에 위치한 궁묘가 가지는 입지적 특징과 궁궐과의 행행동선을 통해 도심부 공간인식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되면서 한양 도성의 도심은 중건된 창덕궁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어졌다. 육조거리, 종로, 남대문로, 돈화문로가 중심을 이루던 기존의 간선도로 체계에 홍화문 앞 도로가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육조거리를 대신하여 비변사가 위치한 돈화문 앞 도로가 정치적 중심 공간으로 부각되었다. 조선후기 왕의 임어지가 창덕궁으로 대부분 고정되어 있던 가운데 사친 존숭의 목적으로 활발하게 영건되어진 궁묘의 입지는 각 시설이 가진 정치적 목적성에 따라 궁궐에 인접한 위치에 조성되어 왕대별로 다른 빈도의 행행횟수를 보여주었다.
조선후기 대부분의 궁묘 행행 동선은 중심 궁궐인 창덕궁 돈화문을 기점으로 이루어졌으며, 종로, 돈화문 앞 도로, 홍화문 앞 도로 등 조선 후기 주요 간선도로의 구조가 경로에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정조의 경모궁 행행과 순조의 경우궁 행행이 창덕궁을 중심에 둔 궁묘 행행의 대표적인 예가 되며, 국가 전례서에 기록되지 않은 행행의 경우에는 궁묘의 입지적 특징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동선을 단축하고 행행의 예법도 간소화되었다. 한편 영조 재위기 후반에 있었던 경희궁 중심의 육상궁 행행은 도시의 서쪽 공간을 창덕궁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도심 공간에 양립시키고자 했던 당시의 도시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고종 2년(1865) 시작된 경복궁 중건 공역이 마무리됨에 따라, 한성부의 도심 공간은 창덕궁에서 경복궁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고종 22(1885) 경우궁의 이건 과정에서 나타나는 궁묘 행행동선 변화는 다시 한양 도성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경복궁과의 거리적 이점, 그리고 궁궐 주변 시설물이 가지는 도시 공간 속에서의 역할관계가 반영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