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숭례문과 주변지역의 공간구조 변화

도시연구, 2022, 30호, pp. 99-128.

대한제국기의 숭례문 주변의 도시구조 (1912년 지적원도를 바탕으로 재작성 그림)

일제강점기 전기 숭례문 주변의 도시구조 (1912년 지적원도 1927년 지적도를 바탕으로 재 작성) 1912년의 도로와 비교하여 확장된 도로와 신설된 도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숭례문 주변의 도로 확장과 조선은행 앞의 광장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태평통 개통으로 인한 덕수궁의 훼철 (1912년 지적원도 를 바탕으로 작성)

일제강점기 후기 숭례문 주변의 도시구조(1927년 지적도 1936년 대경성정도 를 바탕으로 재작성) 조선신궁과 경성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숭례문 전면의 도로가 더욱 확장되었다.

설명 discription

숭례문과 주변지역의 공간구조의 변화는 전차와 도로로 인한 물리적 구조 변화뿐만 아니라 가로의 운용을 통해서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이전 숭례문은 한양도성과 한 몸으로 이어져 있었다 전차와 도로로 인해 숭례문 주변의 한양도성이 훼철되면서 숭례문과 한양도성의 연결이 끊어지고 도시의 구조와 맥락이 바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숭례문의 역할과 위상은 점차 사라졌으며 숭례문 주변지역의 도시 공간은 다양한 변화를 맞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숭례문과 주변지역의 도시공간의 변화를 일제강점기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시대별 변화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숭례문은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도성의 안팎을 연결하는 주 통로였다 숭례문 주변지역은 조선후기 장소적 이점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칠패시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대한제국기 도로의 정비로 인해 칠패시장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으며 도성 안 선혜창 창내장으로 흡수되었다 숭례문은 전차의 개통으로 인해 시간에 따라 통행이 제한되던 제도가 사라지게 되었으며 숭례문 주변의 한양도성이 점차 훼철되기 시작하였다. 
둘째 일제강점기 전기 숭례문 주변지역은 시구개정사업으로 인한 도로의 정비와 확장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숭례문과 연결된 남대문통 태평통 한강통이 확장되었으며 경복궁에서 덕수궁 숭례문 남대문정거장에 이르는 새로운 도시의 축이 형성되었다 특히 남대문통의 조선은행 앞 광장은 식민통치시설이 밀집한 강력한 권력공간으로 보차분리 가로수 식재 도로 포장 등 새로운 가로의 운용이 나타났다 반면 숭례문은 점차 도성의 정문이라는 상징성과 역할이 약화되고 남대문이라는 속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셋째 일제강점기 후기 숭례문 주변지역은 조선신궁과 경성역이 들어서면서 도시공간의 경관이 크게 변하였으며 새로운 시설물들을 연결하기 위한 도로들이 신설되었다 태평통과 남대문통 등 기존 도로들도 정비되어 가로의 운용이 변하였다 조선신궁과 경성역은 일본이 들여온 새로운 문명으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였다 하지만 숭례문에서 진행되던 다양한 의례는 경성역과 조선신궁 등 새로운 식민통치시설로 옮겨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후기 숭례문의 위상은 거의 사라지고 단절된 도시 공간 속의 오브제로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