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성부 광화문통 공간구조의 지속과 변동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2022, 제38권 5호(통권 403호),pp. 107-118.

1897~1910, Yukjo street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redrawing based on Hanguggyeongseongjeondo(1903), Gwanghwamun-oejegwana-silcheugpyeongmyeondo(1908) and the cadastral map of 1912)

1908~1922, Gwanghwamuntong during early japanese colonial period(redrawing based on the cadastral map of 1912 and Gwanghwamuntong-gwanyuji-illamdo(1910s))

1923~1925, Gwanghwamuntong during early japanese colonial period(redrawing based on the cadastral map of 1912 and Gwanghwamuntong-gwanyuji-illamdo(1910s)

1926~1931, Gwanghwamuntong after the relocation of joseonchongdogbu(re-edit based on cadastral map(1927) and drawing from National Archives)

1932~1945, Gwanghwamuntong during late japanese colonial period(redrawing based on Daegyeongseongjeongdo(1936) and drawing from National Archives)

설명 discription

본 연구는 경성부 광화문통의 공간구조를 일제강점기 전기와 후기, 두 시기로 나누어 거리의 물리적 형식과 거리의 운용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육조거리는 조선 초부터 경복궁 남쪽으로 뻗은 거리의 좌우에 육조 관청의 외행랑이 늘어선 모습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파괴되었던 경복궁과 육조 관청들은 고종대에 정비되어 대한제국기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육조거리는 일제강점기에 광화문통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행정구역이 변하게 되었으며, 가로의 물리적 형식과 거리의 운용 역시 변하였다. 이러한 도시공간의 변화 요인을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에서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지속되거나 변화해 온 도시공간을 중층적으로 이해하려 하였다. 특히 공간구조의 변화 과정에서 변한 것과 지속된 것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광화문통이라는 장소의 역사적 층위를 알아보았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 전기 광화문통의 공간구조는 가로의 물리적 형식의 변화가 주가 되어 변하였다. 황토현광장의 형성은 육조관청가까지만 인식되어 왔던 공간이 확장하여 물리적인 연속성을 가지게 하였다. 또한 새로운 근대식 관청의 도입은 거리와 관청의 경계 역할을 하던 외행랑을 대체하여 내부로의 시선을 차단하지 않는 개방된 울타리가 설치하였다. 근대식 건물의 입면은 거리로 직접 노출되었다. 둘째, 물리적 형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광화문통 의 가로형태와 주변의 도시조직, 관청 필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기존 육조관청의 외행랑들 역시 근대적 건축물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구조와 용도의 변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오던 거리의 운용은 큰 변화가 없었다. 광화문통은 백성에게 열려있는 장소로서 거리에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 운용 등은 지속되었다. 셋째, 일제강점기 후기 광화문통의 공간구조는 조선총독부의 이전을 기점으로 변화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이전으로 도시구조가 변화되었다. 도로 양측 경계선에 대한 지적 분할과 총독부의 축에 맞춰 도로의 축이 변화하였다. 또한 전차노선의 연장, 복선화 등을 기반으로 식민권력의 중심지가 광화문통과 주변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넷째, 광화문통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인해 물리적 형식과 거리의 운용이 변하였다. 전차노선의 연장과 복선화로 동서십자각과 월대, 외행랑이 훼철되었다. 늘어나는 자동차로 인해 대부분의 외행랑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담장과 함께 연석과 조경이 설치되었다. 연접한 인도의 경계에는 가로수를 식재하여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였다. 이러한 물리적 변화로 광화문통은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거리가 아닌 차량을 우선한 보차가 분리된 거리가 되었다. 광화문통의 공간구조는 일제강점기 전기 가로의 형태와 주변 건축물의 변화와 같은 물리적 형식의 변화에도 거리의 운용 측면은 과거의 성격이 지속되어왔다. 일제강점기 후기에는 가로의 정비와 주변 건축물의 변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교통의 등장과 가로시설물의 설치 등의 물리적 형식이 변화하였으며, 이에 가로의 운영 또한 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경복궁, 조선총독부와 같은 국가중심 장소의 전면에 위치한 장소성, 가로 주변의 필지와 도시조직과 같은 특성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