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시주거의 흐름: 근대도시의 집합한옥 Korean Urban Housing

공간, 2003.09., 430호, pp.90-93.

설명 discription

도시한옥은 흔히 집장사집 또는 개량한옥(改良韓屋)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왔다. 이 이름들은 각각 도시한옥을 기존의 전통적인 한옥과 구별해주는 세 가지 측면을 시사해준다. ‘집장사 집’이라는 이름은 주택경영회사(住宅經營會社)에 의하여 공급된 주택상품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회사들은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건양사(建陽社), 건남사(建南社), 마공무소(馬工務所), 오공무소(吳工務所), 조선공영주식회사(朝鮮公營株式會社) 등이 있었다. 그들은 한옥을 대규모로 건설한 뒤 이를 분양하는 방식으로 도시한옥주거지를 확장시켜 나간다. 그리고‘개량한옥’이라는 이름은 전통적인 한옥(韓屋)에 유리가 사용되면서 대청이 내부화되고, 함석 차양이 사용되고, 외벽에도 벽돌 타일 등 새로운 재료가 사용되고, 아울러 평면구성도 부분적으로 개량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도시한옥’이라는 이름은 전통적인 한옥이 근대적인 주택생산방식에 따라 필지가 분할되고 동시에 주택이 건설된, 새로운 도시주거유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도시한옥들은 서울이 도시화가 진행되던 193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지며, 해방과 전쟁의 공백기를 거쳐 1960년경까지 지어진다.

이글에서는 1930년대의 대표적인 도시조각으로서, 도성 안 북촌에 건설된 두 개의 도시한옥주거지와 도성 밖 돈암지구에 건설된 도시한옥주거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회31·33 도시한옥주거지, 삼청35 도시한옥주거지, 삼선5 도시한옥주거지로 대표되는 도시한옥들은 1930년대의 대표적인 집합주거이면서, 동시에 근대도시 서울에서 새롭게 완성된 근대도시건축이다. 그 도시한옥들은 그 이전 시대의 도시에 지어진 한옥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생산되고 소비된 것이다. 한 채씩 건설되고 분양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집합된 형태로 건설되고 공급된 것이다. 그리고 건축주의 주문에 따라 지어진 것이 아니라, 익명의 다수를 대상으로 우선 건설하고 소비자가 그것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공급되
었다. 이 도시한옥들은 서울의 첫 번째 근대집합주택이다. 한편 이 도시한옥주거지는 전통적인 한옥 유형이 근대적인 필지 체계 위에 놓이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건축유형이다. 얼핏 옛 한옥 유형과 비슷하지만, 좁은 필지에서 중심에 안마당을 가지면서 동시에 길을 만드는 방식은 도시건축적이다. 산을 가리면서 도시경관을 훼손하거나, 주변 도시맥락과 단절되어 있는 아파트보다, 도시한옥은 길과 집이 잘 짜여진 도시건축으로서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공공영역으로부터 개인영역으로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영역과 문턱이 있고, 길에 대해서는 닫혀 있되 햇볕에 대해서는 열려 있는 안마당을 갖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풍부한 주거건축이다. 고밀도와 주택성능의 문제를 어느 정도 완전하게 해결한 아파트가, 이제 이 시대의 좋은 도시주거건축유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도시한옥주거지의 도시건축유형학(typo-morphology)의 교훈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