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박물관, 2024.
서울 4대 지천과 홍제천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삼각산(북한산), 덕양산, 용마산(아차산), 관악산이 둘러싸고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방에서 흘러내려 오는 지천들이 한강으로 모여 흐른다. 4대 지천은 여러 작은 지천들이 모여 한강으로 흐르는 비교적 큰 하천으로 강북지역은 동서로 중랑천과 홍제천, 강남지역은 동서로 탄천과 안양천이 흐른다. 특히 강북지역은 고려시대 남경에서 조선시대 수도 한양으로 지천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자원이었다. 도성 내에서는 개천(청계천)을 중심으로 수 십여개의 지천은 생활이 기반이 이었고, 도성 밖으로 홍제천과 중랑천은 성저십리라는 도성의 경계였다. 홍제천은 조선시대 한양의 서북쪽 경계였고, 개성·평양 등의 한반도 서북지역과 중국 사신들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홍체천은 이들을 맞이하는 홍제원에서 유래한 명칭이고, 홍제원천과 홍제천으로 불리웠다.
서울의 하천은 산과 함께 도시의 경계였고, 서울의 확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군사정권기 등 서울은 중앙정부의 도시계획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모든 하천이 유사한 시기에 유사한 방식으로 개발이 이루어진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한강과 탄천이 합류하는 일대를 중심으로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발달했고, 백제의 몽촌토성과 위례성 등이 자리했다. 이는 수렵채집과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한강의 범람 등으로 기름진 토지 등의 자연 자원과 한강이 자연적 방어막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시대 남경은 청계천의 원류인 백운동천과 삼청동천(중학천)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생활용수와 자연경관과 함께 산과 하천이 방어막 역할을 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양도성이 되면서 지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음용수, 빨래 등 생활용수뿐만 아니라 지전과 마전 등 산업용수, 도성방어와 교통로, 행정구역의 경계로서 통치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자연상태의 지천을 준천을 통해 개천開川화 하였고, 준천사濬川司 등의 관리기구를 설치하여 지천을 적극적으로 관리운영하였다.
일제강점기 지천은 도시화와 도시확장을 위한 기반으로 하수도와 도로 등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912년과 1925년 대홍수 이후 하천 관리를 위한 직강화와 제방 건설이 시작되었다. 특히 시구개수사업으로 지천의 하부는 하수도, 상부는 도로로 만드는 계획이 시행되었고, 도성 내 뿐만 아니라 일본군 주둔지였던 용산의 만초천(욱천)과 한강 일대의 제방건설 등이 시행되었다. 이는 교통체계가 경의선, 경부선 등의 철도로 바뀐 것과 자동차 등 육상교통의 발달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1936년에는 경성시가지계획과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강북지역은 홍제천과 중랑천 경계까지 도시를 확장하고, 강남지역으로 안양천 일대의 영등포를 경성에 편입해 수변지역인 돈암지구, 영등포지구 등의 대규모 개발을 시작했다. 이는 경성 외곽지역인 정릉천과 홍제천 일대에 빈민촌 형성과 안양천 일대의 영등포, 중랑천 일대의 뚝섬 경공업지역 형성에서 볼 수 있듯이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등 지천은 도시(확장)의 중요한 자원이었다는 말이다.
해방 후 지천은 1963년 서울 시역확장으로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대 하천법 제정으로 청계천, 만초천, 대학천(흥덕동천) 등 대부분의 지천이 복개되어 도로와 하수도가 되었고, 1970년대 공유수면매립법 제정으로 잠실도와 압구정(저자도) 개발 등으로 한강과 지천변의 대규모 도시개발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는 한강종합개발계획(1981년), 택지개발촉진법(1980년) 등과 아시안게임(1986년)과 서울올림픽(1988년)을 계기로 한강의 정비와 지천 변의 대규모 개발이 이어졌다. 강변북로(1969년)를 시작으로 올림픽대로, 서부간선도로, 동부간선도로, 내부순환로 등 한강과 지천을 따라 대규모 고속화도로가 건설되었고, 중랑천 변의 상계지구와 안양천 변의 목동지구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었다. 이는 서울 외곽지역의 대규모 주거지 건설을 위한 간선도로의 건설 과정이었고, 개발면에서 비교적 쉬운 국가 소유의 국·공유지(國公·有地)인 지천과 지천변 토지를 활용하기 위해 공유수면매립과 택지개발이 활용한 것이다. 1990년대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강 정화와 한강둔치 개발로 친수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오염하천정화사업(1987), 하천정화사업(1999년), 자연형 하천복원사업(2002년) 등의 지천 정화와 복개사업이 전개된다. 안양천 살리기 사업, 탄천 살리기 사업(1998년), 성북천 복원사업(2001년)에서 청계천복원사업(2002년)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2002 월드컵을 계기로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은 공원, 마포석유비축기지는 문화공간, 당인리 발전소는 문화시설계획 등이 시행되었다. 이는 한강과 청계천을 포함한 지천이 도시확장과 개발을 위한 자원에서 시민들의 여가를 위한 공간 자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시대를 포함한 전근대 시대 서울의 지천은 생활용수 등의 자연자원으로 사용되던 ‘이수利水’의 시기였다. 물론 준천사 등 치수治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수의 의미가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는 도시화의 과정으로 하천을 복개해 하수도와 도로를 만들고, 홍수 등의 예방을 위한 직강화와 제방 사업이 시행되는 ‘치수治水’의 시기였다. 해방 후에서 1988년(서울올림픽)까지는 도시확장 과정에서 지천을 복개하고, 매립해 간선도로를 만들고, 지천 주변지역을 대규모 주거지로 개발하는 ‘수변水邊개발’ 시기였다. 1988년 이후에는 하천 정화, 복원으로 지천을 여가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친수親水’ 공간으로 조성되고 있다. 이렇게 지천의 변화과정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삶과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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