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박물관, 2024.
중랑천은 조선시대부터 자연환경으로서 뿐만아니라 범람원 지역으로 목장과 농장이 있는 농경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수원, 도시의 경계로 역할해왔다. 조선시대에는 성저십리, 일제강점기의 1936년 경성의 경계로서 도시의 안팎을 구분하였고, 중랑천 주변도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벗어난 외곽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주거지가 아님에도 사냥터, 목마장, 농경지, 교통로로서 기능하면서 도성 안에서 펼칠 수 없는 일들이 있던 장소였다. 한양에서 경성으로 변화해가는 시기에는 수원지, 유원지 등의 새로운 교외 지역의 장소가 조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뚝섬과 장안평에 조성된 동척농장, 뚝섬 경공업지구 등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도시 외곽지역으로 개발임을 알 수 있다. 1960년대부터는 하천법과 공유수면매립법 등으로 중랑천과 전농천 등 인근 하천을 복개하고, 부지를 조성해 대규모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서울의 도시확장 정책으로 대규모 주거지 개발과 도심 내 시설의 이전 등의 개발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이 연구는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랑천 일대의 개발과정과 도시화 과정을 조사기록했다. 특히 옛 중랑천과 새 중랑천 사이의 동척농장 개발과 이후 주거지 형성과 개발과정, 옛 중랑천과 전농천의 복개와 개발 등을 중심으로 조사기록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성저십리, 일제강점기 1936년 경성시가지계획의 동쪽 경계(옛 중랑천), 해방 후 동대문과와 성동구, 중랑구의 분구와 그 경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썸네일이미지 출처: (주)디자인인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