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사회』 사가(私家)난민

73호, 한국공간환경학회 편 (한울)

설명 discription

인간의 기본권을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때 국민은 난민이 된다.
기본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리스 폴리스를 ‘행복한 삶(eudaimonia)’은 가정(Oikos)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1958)』에서 그리스 도시국가는 공론영역 폴리스(Polis)와 사적영역 가정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가정은 필요와 욕구라는 필연성의 영역으로 강제와 폭력이 용인되었고, 폴리스는 이런 필연성에서 벗어나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론영역이었다고 말한다. 현대 국가에서 기본권은 인간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기반인 사적영역의 제도화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사적영역은 공론영역의 기반이 되지만, 아렌트는 사적영역을 소유권(Property)과 부(Wealth)로 구분하였고, 부는 사적영역을 공론화시키고, 공론영역을 사사화(私事化) 시키면서 붕괴시킨다고 보았다. 아렌트는 근대 이후 국가에서는 공론영역과 사적영역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영역이 사적인 가정으로 흡수되었다고 보고 있다. 아렌트는 ‘사사화’를 고전적인 가사 관리(housekeeping), 시장 중심적 관리 관행으로 운영되는 국가와 근대성을 비판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코로나19는 한국사회의 ‘사사화’의 민낯을 드러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의 의무를 가지지만, 경기(경제) 우선순위로 고민하며, ‘재산’은 부(Wealth)로 해석된다. 공동의 노동으로 생산된 도시 또한 사유재산의 집합체로 인식되고, 위기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공공공간을 일괄적으로 폐쇄하며 자유를 사적영역인 주거공간으로 한정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할지라도 국민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공공공간의 폐쇄가 아니라 안전한 범위에서 최대한 개방할 방안을 마련하고, 기본권의 침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우선하지 않은 것은 공공의 책임회피로 사사화의 민낯이다. 한국 도시의 주거는 무주택자, 반지하·옥탑·고시원 등의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도 못하는 가구와 다주택자, 수십억 원대 아파트 가구로 양극화되어 있고, 이런 양극화는 최저주거기준 미달의 주택밀집지역이나 소외계층 밀집지역 등으로 지역별·계층별로 분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지역에서 생활문화나 생활체육공간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되는 개인주거공간의 많은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정책은 다중이 이용하는 모든 공공공간을 일괄적으로 폐쇄함으로써 이미 열악했던 주거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정책의 가치를 ‘최소수혜자에 대한 배려(존 롤스, 1971)‘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 공리주의적 또는 경제적합리성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현재 코로나19 위기상황과 코로나19 이후 주거와 공공공간을 포함한 도시(정책)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고민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