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호(새건축사협의회)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Politics)를 도시(Polis)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건축가에게 정치는 필수다. 사회적 건축에는 더욱 그렇다. 권력에 기대어 밥그릇을 챙기는 정치가 아니라 나와 사회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축을 통한 정치를 고민해야 한다. 「비정규직노동자쉼터 꿀잠」의 공사를 시작하던 날, 건축가라고 소개한 나에게 (고)백기완 선생님은 ‘예술가 선생 잘 부탁하네!’라고 말씀하셨다. ‘저는 예술가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선생님의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라는 글귀를 보고 그때 하신 말씀을 이해하게 됐다. 건축가에게 이런 일을 해줘서 고맙고, 사회 변혁을 위해 역할을 다하라는 의미로 하셨던 말씀이었다.
건축의 사회적역할은 선택이 아니라 도덕적 의무다.
탐욕과 특권을 끌어안고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축은 토건으로 치부되며 ‘꼰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 건축을 시작하는 초년생들에게도 이런 프레임이 씌워져 함께 매도되고 있다. 따라서 건축계 모두가 당당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우선 부당한 권력에 부역하거나, 결탁해 만들어 온 ‘비루한 밥그릇’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우선 건축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사회의 필요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 비정규직 노동자 죽음, 소멸되는 농촌, 도시의 우범지역에도 절실하게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고민과 사회적 건축을 건축 초년생들도 마음 놓고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건축계가 그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들과 함께, 사회와 함께 건축으로 나눌 때 사회는 건축에게 좋은 밥그릇을 내어 줄 것이다. 이는 곧 한국에서 건축이 처음으로 스스로 쟁취한 밥그릇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