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49 서울건축읽기(서울문화재단)
1924년 경성제국대학의 설립과 1931년 대학로의 신설 이전에는 대학로가 없었을까?
이 지역에 근대 고등교육기관이 등장한 것은 정동에 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기지가 1894년 연지동으로 이전해오면서부터다. 북장로교는 연지동에 경신학교(1886)와 정신여학교(1895)를 설립한다. 경신학교는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의 전신이다. 더불어 1907년 ‘공업전습소’가 현재 방송통신대 자리에 설립되었다. 이후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경성고공)가 설립되었다.
종로에서 공업전습소로 가는 길은 현재의 종로35길과 율곡로16길이다. 종로35길은 효제동이고, 율곡로16길은 충신동이다. 이 두 길의 경계는 흥덕동천(대학천)으로 이곳에는 조선시대 신교(新橋)라는 다리가 있었다. 이 길은 한국 최초의 건축과가 있었던 공업전습소로 가는 길이었고, 도시화가 시작된 곳이었다. 최초의 대학로라 할 수 있다. 이곳은 1931년 대학로가 신설되고, 1977년 흥덕동천이 복개되면서 대학로에서 도심의 배후지역으로 변모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번화한 대로변에나 있었던 2층 상가한옥부터 일본의 대표적 건축 양식인 오오카베(대벽)식 건물, 오래된 벽돌이나 타일로 조형미를 구현한 빌딩까지, 근대 건축물들의 박물관처럼 건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대학로는 대학의 이전보다 대형 도시 계획과 도로의 영향으로 변화되었다. 최초의 대학로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도로명처럼 이제 학생이 없는 도시의 뒷골목이 되어 그 의미와 가치를 지우고있다. 하지만 공업전습소가 있었다는 기억이라도 남기려는 듯 당시의 실험적(?) 건축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애써 웃음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