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화+서울』 한옥의 오해를 푸는 열쇠

vol.147 서울건축읽기(서울문화재단)

설명 discription

당시 조선인 주거 담론은 현관, 응접실, 서재 등의 새로운 주거 문화와 부엌, 변소 등의 위생적인 개선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이는 양옥에 조선식 주거 문화를 넣거나, 조선집에 새로운 주거 문화를 도입해 개선한 절충 형태로 선양절충(鮮洋折衷) 등으로 표현된다. 이런 흐름은 1920~1930년대 본격적으로 대규모로 개발된 북촌의 조선집7)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북촌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반일감정, 개화, 신분제 폐지, 근대교육 등의 사회 변화가 집약된 곳이었고, 따라서 주거 문화도 조선집을 계승하며 새로운 문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문화적 통합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고희동 가옥은 주거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이루어진 새로운 조선집 실험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이 지속되었다면 이 땅의 주거는 또 다른 시작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고희동 가옥은 현재 조선시대 기와집 정도로 고착된 한옥이라는 인식의 오해를 푸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